영화일기/Ici et ailleurs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

Lemarcel 2008. 8. 27. 16:21
2008년 8월26일 화요일 날씨 흐림
파리

한국서 선배가 왔다. 대학시절, 그 선배와는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그 만큼의 시간과 우정이 비례 관계는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와의 관계는 특히 그런 경우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몇몇은 가까이서 말을 붙이기 못할 그런 사내들이었다. 이 선배도 역시 같은 테이블에 있었더라도 몇마디 흔한 인사 한마디도 잘 못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왜그랬을까? 언젠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관심을 갖고 그가 곧잘 끌어내던 영화에 관한 질문들도 흥미롭게 경청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어떤 시절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대는 아니지만, 무척 그리워하는 그런 시절이다.  그 시절을 그려보면,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무얼까. 그에게 말을 걸기 부담스러웠던 것들이란. 비디오. 영화클럽. 이런 말들을 하던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것들은 내가 무척이나 동경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겐 연대의식을 알지 못했다. 내겐 그저 내가 보지 못할 영화를 비디오를 가지고 있던, 그러니까. 내가 기어이 보고 싶은 영화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때에, 그 영화를 비디오를 소장하고 서로 나눠보거나 함께 보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특히 몇몇 이들은 내가 결국 극장에서 보게된 그 영화들. 나역시 다른 방법으로 비디오를 구해서 홀로 외롭게 영어자막을 읽어가면서 보던 그때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런 존재들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그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함께 보고 싶지만,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야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거꾸로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나의 묘한 질투 때문인지, 나는 그와 말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그가 본 어떤 영화들에 대해서 다른 한편 귀기울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었던 같다. 파리서 시네마떼끄를 다니고, 아르데쎄라는 대안적 상영관들을 쫓아 다니며, 그때 내가 너무나 보고 싶었던 그 영화들을 본다. 아니 전혀 내가 알지 못했던 영화의 역사의 부분들을 조금씩 조금씩 확인해가고 있는 오늘. 나는 그시절에 대한 내 모습을 잊고 있었다. 그가 25일 파리에 왔다. 다시 그 시절이 떠오른다. 2008년 8월25일 에펠탑에서 서성이고 샹젤리제대로에서 서성이다가 26일 그와 함께 한인슈퍼에서 한국 소주 비스무레한 술한병을 사서 타르콥스키를 만나러 갔다.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Andreï Arsenievitch Tarkovski
안드레이 아르제니에비치 타르콥스키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1932년 4월4일 러시아의 Zavraje에서 태어났고 1986년 12월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죽었다. 1987년 1월3일 프랑스 파리 인근 Essonne 에쏜느지역 Sainte-Geneviève-des-Bois 쌍뜨-쥬느비에브-데-브와에 라는 마을에 있는 cimetière orthodoxe 오르토독스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주의 할점은 Sainte-Geneviève-des-Bois라는 이름의 cimetière도 근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냥, 생각없이 썽뜨쥬느비에브데브와에 있는 무덤이라고 생각없이 그 말 찾아가면 가면, 다른 곳에 이를 수 있다. 그 생뜨쥬느비에브데브의 묘지와 시므띠에 오르또독스 사이는 정말 많이 걸어야 한다. 정말 주의 해야 한다. 사실 내가 그 생각없는 이였다. 그리고 더 생각없이, 두 사이를 걸었다. 대략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하여튼 그 장소는 Sainte-Geneviève-des-Bois에 있는 cimetière orthodoxe 무덤이다.

그곳에서 다시 시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RER C 선을 탄다. RER C 노선 중에서 Sainte-Geneviève-des-Bois에 가는 RER를 타면 된다. Sainte-Geneviève-des-Bois역에 내린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Piscine (수영장)역에서 내린다. 참고로 101번 102번 등의 버스가 있는데, 지역 시골마을 버스이기에 그렇게 자주 다니지 않으며, 그 버스들은 대략 30여분 마다 한번씩 운행한다.(하지만 프랑스의 작은 마을들은 매 시즌이 지나고 나면, 시청의 의지와 재정적 능력과 필요에 따라 그 시간표와 노선은 수정된다.) 여하튼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내리면  수영장 입구인데 입구쪽으로 쭉 걸어나간다. 그리고 그곳엔 주차장이 있다. 그 옆으로 길을 따라 잠깐 걷는다.  cimetière orthodoxe 묘지로 통하는 작은 문이 하나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가지 말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정문이 나온다. 그곳으로 입장한다.
정문에 가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가서,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인을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엔 수천구의 무덤이 있는데, 표지판에는 숫자만 가득할뿐이다. 따라서, 타르콥스키의무덤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질문해야 한다. 내가 만난 관리인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라는 영화감독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아보지도 않고, 묘지 지도를 꺼내어 그 위치를 바로 표시해 주었다.  (그 지도는 선배가 챙겨갔다. 나중에 선배가 보내주면, 올려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착했다.
지금은 부인과 같이 묻혀 있다. 다른 무덤들 보다는 더 넓고 좀 특이한 석상이 있었을뿐이다. 그리고 비명에는 러시아 말로 뭐라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러시아 말을 아시는 분은 사진을 보시고 적어주시라.) 그곳에 가서 편지를 하나썼다. 그리고 사가지고 간 술을 따랐다. 그리고 우리는 죽은 자 곁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한참 앉아 있었다. 중간에 다른 러시아 인들이 두어번 찾아왔다. 프랑스에 온 러시아 관광객들 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불어를 하는 가이드인듯한 사람이 그들을 인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무리들, 한두 사람이 잠시 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을 조금 떠올려 보자면, 작은 캠코더를 줄곧 손에 들고 이 장소를 담아내는 사람, 무덤에 손을 잠시 올려놓은 사람, 잠시 멈칫 서서 카메라 서터를 소리를 내는 사람, 소곤소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 우리는 옆에서 술을 한잔 따라 마셨다. 형은 열심히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들고 서있기가 무척 부끄러웠다. 결국 나는 고개를 숙인채, 묘지의 모퉁이와 나의 작은 신발을 찍어보았을뿐이다. 얼마 뒤 우리도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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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돌아 오기위해서 버스를 탔다. 우리는 그곳에가기 위해서 걸었다. 하지만 돌아올때에는 버스를 탔는데, 수영장 역 근처에 있는 교회Eglise역에서 탔따. 왜냐하면, 우리가 그곳을 떠나올 시각에 버스는 대략 2시간 동안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RER C선을 타고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길, 그곳은 파리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