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cinejournal

L'Homme de Londres (2003-2007) 런던에서 온 남자 Bela Tarr 벨라 따르

Lemarcel 2008. 10. 17. 19:27
L'Homme de Londres
The Man from London
런던에서 온 남자
감독 Bela Tarr 벨라 타르
공동 연출자 Agnes Hranitzky 아네스 라니츠키

2003-2007
132분
프랑스,헝가리,영국,독일
Miroslav Krobot, Tilda Swinton, Erika Bok


2008년 10월 13일
Reflet Medicis
19시45


'살고 싶다. 잘 살고 싶다.' 벨라따르의 영화를 보면, 굉장히 낯선 시골의 어느 장소든지 어느 항구라든지 작은 도시라든지 상관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물들이 찾아 모여드는 곳은 유럽식 특히 북 유럽식의 차가운 분위기의 술집이며 카페이기도 하고 식당이기도 한 브라슬리 같은 곳인데, 결국 인물들은 그 곳을 찾아온다. 그곳에서 혹은 집으로 걸어가는 길, 그 흑백화면의 바래진 모습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그 무거운 발걸음을 담아내기 위해서 거센 저항력 있는 자연들 비, 바람, 진흙과 진창들이 한데 어울러지고 천천히 기어이 움직이는 그 카메라는 그들의 무거운 삶을 보여주는데, 그 무게감은 어쩌면 시간의 무게감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지-시간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이지도 모른다. 그런데, 물리적인 의미의 시간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프랑스 파리의 골수 영화팬들도 그의 영화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리를 많이 뜨는 편이다. 하여튼 그리하여 도달하는 곳은 집이다. 혹은 중간에 그 브라스리에 들린다. 그때에, 그들은 그렇게 아무말 없이 술을 마신다. 혹은 가만히 앉아 있다. 그때, 그 문장이 떠오른다. '살고 싶다. 잘 살고 싶다.'
이 런던에서 온 남자는 내가 두번째로 본 벨라타르의 영화이다. 두말할 필요없은 경지의 순간을 보여준다. 물론 사탄탱고처럼 할말을 잃게 만드는 커다란 세계는 아니다.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소품에 불과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그럼에도 이 작품은 휼륭한 근작이자 매우 좋은 벨라타르의 입문작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든다. 여러모로 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누군가 내게, 그는 굉장히 괴팍하다 말했지만, 그건 물론 오해일 가능성이 더 많다라고 나는 즉각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점점 그가 아니 그의 영화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장소는 매우 무겁고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한 세계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런류의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은 자연의 풍광이나, 인간이 세워놓은 건축물들 사이의 놓인 인물의 움직임이 장중하기도 하고 때때로, 평화로워보이기까지 하는 참 다양한 표면을 미끄러져 가면서 어떤 감각들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어이 이어지는 어떤 이야기들과 대화들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들은 그런 지각-이미지들로 이끈다.보면 보면수록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그것은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든다. 영화가 사유를 갖게 해서가 아니라, 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삶의 아름다움 대신에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삶에 대해 애매한 고민 같은 것을 하고있는 듯한 표면이 그러하다. 영화의 죽음과 우울함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미지 속에서 한 등장인물이 걷고 서서히 카메라가 따라가고 때때로 아코디언 같은 음악이나 교회종소리 그리고 발자욱 소리등을 함께 따라갈때, 그들이 과연 그곳에서 (저런 곳에서) 살고 싶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 그들은 결국 살고 싶은 것이다. 저 고통스러운 검은 색과 하얀색으로 구성된 컬러 혹은 그들이 뭘 하든 간에 이미 주어진 음영의 색과 밝기는 무언가 신비감을 부여하고 저 인물들은 오늘도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불만처럼 벨라 따르는 저 인간들이 하찮다라고 여기는 것 같아 냉혹해 보인다. 그럼에도 정반대의 의지의 이미지들이 있다. 벨라따르의 이 영화가 아름답다라고 말할수 있다면 오로지  그 순간을 드러내는 인물의 시선과 그 발걸음들이다. 나는 지금 그 이미지를 머릿 속에서 반복해서 그려내고 있다. 할수만 있다면 훔쳐내고 싶다. 과연 이 두가지 면 중에서 무엇이 진짜일까?
임시적 나의 해답:그런데 참 이상한 장면이 있다.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되는데, 그 여인마지막 그 슬피 우는 여인의 얼굴은 완전히 정지 화면같다. 멈춰버린 것 같고 카메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한참을 멈춰있다. 마치 죽어버린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되는 또는 이미 우리들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저 넘어로 가버린 사람처럼 보이는 이 인물이 남겨져 있다. 그녀를 보면서 누구지? 저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거지? 저 사람은? 이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눈은 깜빡이고 있다.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살아 있다. 이 순간을 한문장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되어버린다. 죽은 것처럼 살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살고 있는 저 인물들은 어쩌면 죽은 것 처럼 살고 있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고통을 느끼는 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적적으로 어떤 즐거움을 기분 상쾌함을 조금 보는데, 때때로 마치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그것이라고 여기고 싶은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해답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더 보고 싶다. 그의 이미지들과 그 소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