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일기/劇場傳 / 劇場前

Tadjrobeh Expérience (1973)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Lemarcel 2008. 11. 19. 07:49
이번주 내내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번주에는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극장을 찾아가리라.


 
Tadjrobeh
Expérience
Abbas Kiarostami
1973
1H


물론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아직 가지 못했다. 뭐.. 여러가지 이유 혹 변명따위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아직도 지리한영화촬영이 끝나지 않았고 게다가 이번주엔 출연진 모두가 바쁘시다. 무척. 또한 많이 힘들어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작품이 첫 장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저 약속으로 이뤄져 있는 '팀'이다. 그 약속은 오로지 이번주까지만 가능하다. 또 하나의추가하자면, 주말부터 상태가 비리비리하더니.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시간이 가고 있다. 아마도 정말 하늘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제 오늘 시간이 좀 나서 극장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극장에서 기침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정말 좀.. 그렇다. 그것은 참으려는 사람이나 그걸계속듣고 있어야 할 사람이나 둘다 마찬가지 일것이다. 엇저녁 좀 무리하게  한 극장에서 무용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기침이 쏟아져나오려는 기침을 억지로 참고 버티는 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눈이 찔끔찔끔감기고 뭔가 하여튼 되게 힘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든다. 몸이 상해서 폐렴에 걸리면, 앞으로 극장에 못갈지도 모르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좀 몸을 추스리는게 우선이다 라는 식의 생각 혹은 잡념들. 결국엔 아직도 극장에 못가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 새벽엔 비몽사몽간에 혼자서 자꾸 잠을깨면서, 자꾸만 키아로스타미의 experience의 그 포스터가 아른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꿈까지 꾸게 만들었다.  무슨 꿈인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 소년을 계속 바라보던 기억만이 난다. 그리고 화면은 흑백이었지만, 프레임 주변은 매우 푸르스름한 빛이 돋아나듯 반짝였던것 같다. 참 이상한꿈이다 싶더랬다. 사실, 난 무조건 극장에 가고 싶은 것이다. 몸이 아프더라도 가고 싶은 것이다. 혹은 영화촬영을 못하더라도 좀 부실하게 하더라도 그냥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그러하지 못했다.
이번주에 가장 보고싶은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1973년작 Experience 이 작품이다. 왜그럴까? 이 작품을 보고 싶은 이유는 단순한 이유이다. 그냥. 키아로스타미 영화니까. 그렇다. 그게 다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쩌면, 지리한 말들일지도 모른다. 그 부차적인 이유에 대해서 좀더 단순히 그것을  이곳에 옮겨 보기로 한다.
그것은 두가지 이다. 하나는 Allocine에 나오는 영화 소갯글에 적힌 짦은 시놉, 다른 하나는 저 포스터에 담긴 흑백 사진 한장. 그것이 아마도 나를 이처럼 만든 것 같다.


Mohammad, un adolescent de quatorze ans, est employé à tout faire dans une boutique de photographe où il est autorisé à dormir. Il est amoureux à distance d'une jeune fille de la bourgeoisie qui habite à l'autre bout de Téhéran.


 시놉에 소개되것처럼 저나이에 힘들게 삶을 이끌어가는 저 어린 소년의 모습이 연상케되고 그리고 한 부르주아지의 작은 딸을 흠모할 그 소년의 모습을 그려본다는 건 좀 시시해 보일수도 있다. 그런데.흑백 사진 속 14살 정도의 저 어린 아이의 고독을 보라. 그 물아래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저 소년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고독과 뭐가 다를지 분간할수 없을 지경이다. 이 저 길바닥에 뿌려진 혹 고여진 물위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아이의 모습을 저 아이의 저 순간에 가까이 가고 싶다. 저 아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서, 촬영을 하다가 쉬는 시간, 자꾸 콧물과 기침소리가 신경쓰여서 극장을 자제하고 있는 어제오늘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목도리를 두르고 옷을 주섬주섬챙겨입고 지하철을 타고 생미쉘이든 헝뷔또길이든 가서 그애를 찾아가는 것. 그것은 이번주의 나의 소망이기도 하고 실은 그런 마음이 사실 키아로스타미의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요'라는 그 꼬마친구의 마음일 듯하다. 내 자신이 이런 마음을 안고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찾아가서 저 순간에 가까이 가 볼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의) 감상이 또 어딛겠는가. 이런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아니, 무엇보다 이번주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왜냐하면, 저 친구는 언제 우리곁에서 (혹은 극장에서) 사라져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걸까? 무조건.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보고 싶은 걸까? 너무나 보고 싶어서. 자꾸만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왜그럴까? 사실 부차적인 인상을 옮겨줄만한 두어가지에 대해서 말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왜그럴까? 왜 나는 지금 그것을 보아야만 하는가? 그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어떤 마음같은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옮겨놓았지만, 실은 그것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더 궁금해진다. 왜 그 영화를 보고 싶는가? 너무나 보고 싶은가? 궁금하다. 너무나 궁금하다.

덧붙이며.
이 다음은 영화를 본후에 적은 것이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아. 어서 나가야 쥐. 언제? 지금은 벌써. 영화가 끝났을텐데.. 가장 빨리. 갈수 있는 때에.